심플라이프
우리 사회는 점점더 복잡해지고 새로운 용어가 나오고 모르고 가만히 있으면 다 뺏아 갈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제도와 부담이 생기고 법전은 부풀어 오르기만 한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어떤 제도를 만들면 또 부작용이 생기고 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또 보완책을 만들고 실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감시인을 만들고 공무원을 늘린다. 또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국민은 또 세금을 부담하여야 하고 결국에는 기본으로 찾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국가적인 문제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대학입시에서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과도한 입시준비를 예방하기 위하여 이런 제도 저런제도를 만들었는데 학교별 입학시험 제도 하나를 줄이면 또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게 위하여 논술이나 학생생활부 등을 보게 되고 학생 선발의 공정성을 보장한다고 입학사정관을 만드니 또 부작용과 부정이 생기고 끝없는 인간의 문제점들이 노정되게 된다.
이렇게 복잡해지는 사회구조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또하나의 문제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는 사이에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시시티브에 다 찍히고 우리가 뭘 먹고 뭘사는지 다 전산망에 잡힌다. 물론 범인이 잡히고 투명한 사회가 되어가는 장점은 있다. 그러나 그야말로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을 정도로 다 보이는 세계가 되었다.
그리고 국가가 생활을 보장해 달라는 복지욕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렇게 점점 더 모든 분야에서 국가의 개입이 늘어나게 되면 국가는 점점 더 비대해져 우리가 실패했다고 다 알고있는 공산주의 사회 구조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렇게 형태는 다르지만 역사는 반복되어 가는가.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제도가 발전하고 경제가 발전하고 국가 통제가 늘어나도 각종 범죄는 인류 시초나 다름없이 여전히 같은 형태로 우리를 위협한다. 결국 제도의 발전과 상관없이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이 문제다.
기독교에서 인류 발전 초기에 율법이 주어지고 예수가 탄생하기 즈음하여 율법이 그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율법과 규칙의 표면적인 규율 그 자체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어버려 오히려 인류의 생활을 옥죄는 것으로 변질해 버렸고 이런 문제를 되돌리기 위해 예수는 모든 율법의 기초는 사랑이라고 갈파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율법을 외우지 않아도 사랑이라는 기초위에서 생활하게 되면 율법을 실천하는 것과 같게 된다. 우리가 우리를 규율하는 법전 전체를 다 외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 기본인 이웃에 대한 사랑, 공평 정의 이런 가치관에 입각해서 생활하면 별 문제는 없이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제도가 점점 기초를 무시한 체 발전하게 되다 보면 사람들은 지키기가 어렵게 되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이를 담보하기 위한 사회적인 비용이 커지게 된다. 이 제도의 효과 그러니까 비용 편익을 따져보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비용만 남아있고 효과는 무엇인지 또 당초의 제도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점을 검토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국가적으로도 심플한 제도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되고 우리들 개개인의 생활도 모든 복잡한 규칙과 법적 환경을 떠나 단순한 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