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간병인 Vs. 직접 간병

관허 2014. 2. 21. 22:16

난 성장하고 나서 제대로 아버지하고 대화를 나누어 본적이 없다.

 

2012년 부터 치매로 집을 나가시기 시작하더니 도저히 집에서 계속적인 간병이 힘들어 어느 요양원에 모셨는데 힘들기는 매한가지이고 돈은 돈대로 엄청 들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낯선 간병인과 같이 지내면서 고함을 질러 주변 노인들로부터도 배척을 당하고 요양원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여 다시 집으로 모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왜 집에서 날 쫓아 내었느냐하는 의미였고 간병하는 사람이 제대로 의사소통을 못해주는 것이 불만이셨던 것 같다.

 

집에서 간병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가 감독하는 체제로 갔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밤에 우리의 눈을 피해 간병하는 사람이 귀찮다고 아버지를 묶어 놓고 자는 증거가 발견되어 그날로 간병하는 사람을 해고하기도 했다. 그렇게 수차례 간병인을 이사람 저사람 썼는데 2013년 봄 무렵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했다. 물론 병원에서는 간병인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체제였기에 간병인을 붙였다.

 

다행히도 성실한 간병인이었고 뻣뻣하게 굳은 아버지의 몸을 움직일 만한 힘이 있는 간병인이었기에 그런대로 잘 넘어가 일단 퇴원을 했다. 그러나 다시 폐렴증세로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구한 간병인은 힘이 없는 할머니였는데 그만 보호자들의 실수로 간병인이 모자란다는 소개회사 말만 듣고 고용을 했는데 간병인의 온갖 태만이 눈에 보였으나 어쩔 수 없이 한달간은 참았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병원에서 고함을 질러 5인실에서도 쫓겨나 비싼 2인실로 갔었다. 그러면서도 욕창이 엉덩이에 벌겋게 번졌다. 폐렴때문에 입원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을 아버지한테 드린 것 같았다. 간병인을 상대로 소송이라도 하고 싶었다.

 

다시 퇴원하여 집에서 입주 간병인을 썼는데 다시 폐렴증세가 나타나 할 수 없이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지난번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내가 직접 낮에는 간병하고 밤에는 집에 있던 간병인과 교대로 봐드리기로 했다. 그러면서 매일 10시간 가량을 옆에서 간호를 해 봤는데 이리저리 배워가면서 했다. 아버지는 온몸이 뻣뻣해 변을 보거나 하면 시트하고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데 한쪽 옆으로 세우고 벼개나 쿠션을 몸을 받치고 변을 치우고 새 기저귀하고 시트를 반쯤 깔고 나머지 반은 접어서 아버지 허리밑에 깔고 반대쪽으로 다시 기울여서 나머지를 펴야했다. 소변은 소변통을 늘 아래에 받쳐두어야 했다. 하루 몇번씩 변을 볼 때에는 몇번씩 그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데 뻣뻣하면서도 온몸에 힘을 주고 계시기 때문에 여간 무겁지가 않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지 고함소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말은 잘 못하지시만 질문을 하면 몇마디 표시정도는 하는 정도로 회복은 되신 것 같았다. 몸의 기능은 점차 퇴보하여 소화기능을 회복하는데에 한 20일간이나 걸릴 정도였는데 모르는 간병인이 와서 제멋대로 방치하고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 보단 정신적 안정이 되시는 것 같다. 이렇게 근 20일 간 하루 10시간씩 붙어있다는 것은 생전처음으로 해보는 일이라 제대로 소통은 안되지만 그래도 무언의 교감이 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배에 튜브를 꽂아 음식을 직접 배에 넣고 배설은 시도 때도 없이 누워서 하시던가 옆으로 자세변환 할 때 배변을 하시던가 한다. 그래서 수시로 점검을 해야 하는데 조금만 이상하면 싸셨는가 볼까요 하면 어떨 때는 괜찮아 하시던가 "응" 하고 보라는 의사표시를 하신다. 어떨 때는 뭐라뭐라 하시는데 알아듣지 못하면 고함을 지르시기도 하신다.

 

이렇게 줄곧 붙어서 간호해보니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의 교류를 느낄 수 있었고 새로운 감정이 솟아나기도 한다. 부모가 늙고 병들면 무조건 간병인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직접 한번 간병을 해보기를 권장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만일 자식들에게 이런 고생을 시키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