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 대하여
난 골프를 미국에서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배웠다. 미국 대학원에 유학을 간 첫해 학교 게시판에 골프 강습광고가 붙었다. 무료 강습이었다. 하루 나가보니 골프채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휘둘러 보라고 했다. 힘빼고 치란다. 그러는 와중에 그 도시에 있던 친구들이 골프를 치러 토요일 새벽에 나오란다. 난 이제 겨우 잡는 방법을 배웠다 했지만 그냥 나오란다. 부랴부랴 가라지세일을 찾아 골프채 풀세트 가방 포함해서 30불에 남이 쓰고 버리는 것을 샀다. 키가 큰 사람이 썼는지 좀 길고 무거웠지만 쓸만했다. 고물 가방안에는 골프채 청소하는 솔같은 것도 들어있고 쓰다남은 볼과 티 같은 것도 있었다.
무조건 토요일 새벽에 나갔다. 80년대니까 그당시 입장료 5불이었다. 티박스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난생처음 티박스에 서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휘둘렀으나 물론 공따로 채따로 헛스윙이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뒤의 대기하는 미국인들이 질책하지도 않고 그냥 격려해줬다. 풀스윙하지 말고 뒤로 조금만 빼서 맞히고 나가라했다. 그 말대로 한 1-2미터 뒤로 뺐다가 공을 무조건 맞히고 서둘러 친구들을 따라갔다. 어떻게 쳤는지 정신없이 툭치고 툭치고 따라가서 무사히 한바퀴돌고 집에 갔더니 다음날 아침부터 등, 허리가 쑤시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골프 머리까지 순식간에 올리고 친구들한테 코치를 받아가며 골프를 치게 되었다. 골프장 교습료는 하나도 들지 않았다. 나중에 골프채를 하나 장만했다.
귀국해서는 골프 경비가 어찌나 비싼지 회원권은 엄두도 못내고 골프 자체를 거의 그만 두었다. 어쩌다 해외 출장을 가게되면 빌려서 한번씩 잡아보긴 했지만. 그러다가 2000년에 베트남을 가면서 다시 골프를 시작했다. 그당시는 하노이 시에 골프장이 하나밖에 없었고 현지인들에게는 별로 보급되지 않아 주로 외국인들이 즐겼다. 회원권과 사용료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주말이면 새벽부터 나가 골프를 쳤는데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거의 하루종일 골프장을 돌았다. 그 더운 여름날에도 계속했고 땅에서 수증기가 올라와 견디기 어려워도 잠깐 주저앉아 쉬고는 또 쳤다. 구정 연휴는 하루 45홀 치기도 했고 연속으로 따져보니 일주일에 225홀까지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극기훈련이나 운동으로 쳤지 실력향상을 위하거나 내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회원권은 나중에 팔면 되니까 연간 사용료 몇백불이면 추가로 골프장에 내는 것은 캐디요금말고는 없었다. 카트끄는 캐디도 우리돈으로 5천원 정도로 가능했다.
그러다가 몽블랑 산이 보이는 곳에서도 쳤고 프랑스에서, 스위스에서, 영국에서, 호주 시드니에서도 쳤으나 한국만 오면 친구들이 치자고 해도 한번나가면 수십만원이 들어 도저히 계속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외국에서 싸게 즐기던 것과 비교해보게 되어서 그렇다. 이 돈이면 일년을 즐길텐데 싶어서다.
특이한 경험을 보면 스위스에서는 골프보험에 들지 않으면 치지 못하게 하는 골프장도 있었다. 시에라리온에서는 그린이 검은 모래에 기름을 묻힌 곳에서 퍼팅을 하기도 했다. 모래니까 발자국이 있어 퍼팅하기 전에 캐디가 가마니 빗자루 같은 것으로 쓸어준다. 그런데 공이 귀한 곳인지 골프장 담넘어 공이 날아가도 캐디가 어떻게 찾아 주워왔다. 자마이카에서도 한번 쳤는데 남자 골프캐디가 전부 싱글치는 사람들이란다. 내 실력으로 그린을 읽거나 하고 있으면 넌 모르니 하라는 대로만 해라고 했다. 이쪽으로 치라하고는 방향을 잡아주면 그대로 치기만 하면 되었고 뒤에서 방향 잡아주고 적합한 채 꺼내주고 그야말로 머리 쓸일이 별로 없이 편하긴 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가서도 다행히 골프장이 하나 있어 골프를 즐길 수가 있었다. 뜨거운 햇볕에 어떻게 치나 싶어도 오히려 말라리아에 견디기 위해서도 햇볕을 쪼이는 것이 좋다 생각해 개의치 않았다. 새벽산책을 대신해서 9홀을 한시간만에 돌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뭐 복잡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치고는 달리고 치고는 달리고 해야 한시간에 끝낼 수가 있다.
나이지리아는 그 나름대로 회원들간의 각종 모임이 있는데 보통 부킹없이 오는 순서대로 짝 맞춰 내보내거나 3사람이 나가거나 한두사람이 나가거나 "Can I join you?" 하고 물으면 거절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프랜드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도 스코아 카드는 열심히 원칙대로 적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때로는 "Crazy day"라 해서 복장을 요상하게 입고와야 되는 날도 있었다. 이날은 남자가 여자복장을 하거나 전통복장을 하거나 광대처럼 꾸미고 골프를 쳐야 한다. 또 골프채를 퍼트 포함해서 4개만 가지고 18홀을 도는 날도 있었다. 어떻게 치는가 싶지만 4개만 가지고도 풀 골프채로 치는 것과 스코어는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결국 골프채에 투자하고 복장에 투자하고 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가 아닌가. 베트남이나 나이지리아나 새공가지고 치는 것은 특별한 시합 아니고는 없었다. 거의 헌공 주운것을 골프장 근처에서 사서 치니 골프공값도 별로 들지 않고 공찾으러 다니면서 버린 공도 열심히 주워서 사용했다.
그런데 한국만은 왜 이렇게 골프치기가 어려운지 4사람 맞춰야 부킹이 되고 골프 전동카트는 의무적이고 캐디 사용도 의무적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퍼블릭도 마찬가지이다. 고급운동으로 인식되고 있고 비싼 식사를 해야 하고 고급 목욕탕에서 목욕을 꼭 해야 하는지. 외국에서는 거의 옷을 입은 채로 가서 신만 갈아신고 바로 나갈 수 있었는데. 또 한국에서 골프치던 사람들은 왜 그리 실력이 좋은지 내기를 하면서 쳐서 그런지 우리같은 사람들하고는 상대가 안된다. 난 그렇게 오래 쳤어도 그저 스코어는 100개 내외에 그치고 있는데. 이제 외국 나갈 기회는 없어져 가서 내 골프운동도 거의 종지부를 찍어야 하나. 골프채도 썩어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