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전환

역사의 큰 흐름

관허 2015. 3. 7. 00:05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는가? 종말이 있는가? 아니면 어떤 전능자가 계획하고 있는 형태나 살아가는 방식으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끌려 가고 있는가? 아니면 전혀 우연한 개개의 사건이나 힘의 우위에 의해 그저 역사가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질문이고 우리가 논리적으로 판단하기도 어려운 문제이다.

 

종교에서도 보면 예수 그리스도 이후 기독교의 논리나 종교체계를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학설을 내세우고 논쟁을 한 결과 어떤 것은 이단으로 정죄되고 어떤 것은 공의회에서 채택되어 정설로 되었다. 그러나 또 종교개혁에 의해 다양한 신교파가 생겨났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능하고 한분이시라는데 믿는 사람들은 각기 제나름대로 약간의 다른 학설을 세워서 믿는다. 그러면 종교도 발전하는 것인가? 이슬람은 또 어떤가 기독교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면서도 아직까지도 과거 종교전쟁의 잔재가 남아있다. 그러면 한분이신 하나님은 이런 것을 미리 계획하고 역사를 끌고 가시는 것인가 아니면 내버려 두고 계신 것인가?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의 큰흐름을 보면 국가간, 민족간, 종교간의 투쟁을 거치면서 그래도 발전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방향으로 흘러 왔다고 보인다. 이러한 흐름도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른 대립되는 생각이나 사상, 그리고 서로 다른 경제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나름대로 투쟁하고 멸망하고 승리했으나 그저 큰 흐름으로 보면 어느 집단이나 승리와 패배의 역할을 한 배우에 지나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마치 그런 투쟁이나 마찰이 없으면 발전이란 애시당초 없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느낌이다. 이것은 헤겔의 정, 반, 합의 변증법이 아니라 새로운 세력과 구 세력간의 투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승리한 것을 새로운 것이라고 할 경우에는 발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역사의 후퇴도 있을 수 있다.

 

이런 큰흐름의 관점에서 우리 한반도를 보면 어떻게 될까. 남과 북은 태극기의 태극처럼 서로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남과 북은 각기 그 내부에서도 서로 대립되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북도 체제 위험요인이 있고 남도 체제 위험요인이 있다. 북도 내부에서 마찰이 있고 남에서도 마찰이 있다. 마치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한다. 큰흐름으로 보면 이러한 내부 움직임은 통일을 위한 에너지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좋고 나쁜 가치 평가를 떠나 체제평가 여부를 떠나 어느쪽이 이길 것이냐 질 것이냐를 떠나 그저 하나의 에너지 파동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에너지 파동은 지금은 두개의 공(경계) 안에서 에너지 파동이 일어나지만 어느 계기를 만나면 하나의 공 안에서 파동을 계속하지 않을까. 물론 어느 한쪽의 세력은 현저히 힘이 약화되겠지만. 그런데 애처로운 것은 이러한 에너지 충돌에서 그저 사람의 목숨은 부딪혀 깨어지는 자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가지 위안은 예전의 마찰에는 사람이 소모품으로 취급되었지만 현재나 미래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위안은 이미 사회주의는 철지난 체제라는 것이다.

 

이런 큰 역사의 흐름에 휩쓸려 가는 우리들은 그저 잠시 각자가 맡은 역할에 충실할 뿐이 아닌가. 몇천만분의 일이지만 힘을 보태어 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