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말과 철학

관허 2016. 1. 13. 23:11

나는 때때로 한번 한 말을 두번 반복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어 중언부언하는 것이 아니라 젊었을 때 부터의 하나의 습관처럼 형성된 것인데 그 과정을 분석해 본다면 이렇다. 내가 머리 속에 떠오른 어떤 사실이나 그림을 남에게 전달하기 위해 일단 말을 해 본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feedback 해보면 내 뱉은 말이 상대방의 머리에서 재 구성되어 형성될 사실이나 그림과 원래 내 머리 속에 있는 사실이나 그림과 제대로 비슷하게나마 재구성될 것 같지가 않다하는 것이 매번 느껴진다. 따라서 난 다시한번 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까 하면서 두번째 말을 하게 되나 그 때 애석하게도 새로운 단어나 새로운 묘사 방법이 떠오르지 않고 같은 말만 내 뱉고 마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결과 난 작으나마 또 하나의 좌절감을 맛본다. 말을 듣는 사람들은 나의 이러한 내면의 움직임을 모르기 때문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어떨 때는 말이 점점 빨라지고 한문장이 끝을 마감하기도 전에 다른 말이 마구 튀어나오고 그 결과 듣는자는 논리적 연결이 잘 안된다든지 어디서 끊어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지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 원인은 나의 머리 속의 생각의 흐름이 말의 흐름보다 속도가 빨라 말이 그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 생각과 언어의 차이점 나아가서는 우리가 보는 시각적 현상과 언어로 표현된 현상의 차이점과 한계를 생각하게 해 준다.

 

그런데 철학의 한분야에서 과연 인간에게 언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본다. 인간이 사물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언어를 매개로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로 된다. 종족에 따라서는 다른 종족에 있는 특정 언어(단어나 관계표현)가 없음으로 해서 그것을 자각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는데 심지어는 표현하는 말이 없으면 인식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란 말인가? 하여간에 언어에 대해 많은 분석을 해볼 필요는 있겠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이란 철학자는  "철학이 표현될 수 없고 생각될 수 없는 것(윤리학이나 도덕률 종교같은 것)을 표현하고 생각하려는 시도가 되어버렸다."고 말하고는 발언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말은 우리에게 큰 안도감을 준다. 왜냐하면 그 어렵게 기술된 도덕철학이나 윤리철학 종교학 같은 것은 우리는 거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이 말을 들으니 아하 과연 철학자에게 불가능한 것을 우리가 굳이 알고자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굳이 윤리니 도덕이니 종교니 하는 것을 이론적으로 천착할 필요 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들을 연구한다고 머리를 싸맬 필요없이 그저 생업에 종사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언어의 한계 때문에 철학을 과학으로서 연구하려던 노력이 한계에 부닥치고 오히려 철학이 예술의 영역에 한층 가까와 진다는 것을 읽으니 새삼 우리의 생활에서 시와 산문 그림등 창작의 즐거움이 더욱 중요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