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의 한계
(주)웅진씽크빅에서 2010년 출판한 How to Read 시리즈 16권을 한꺼번에 사서 읽고있다. 이는 니체, 라캉, 사르트르 등 문제가 될만한 철학자, 심리학자 등의 저작을 일목요연하게 입문서로 정리한 책을 번역한 책들이다. 이는 영어제목이 시사하는 그대로 해당저자의 저서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들의 요체는 무엇인가, 또한 그들이 가지는 시대적인 배경과 영향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정리한 책이다. 상당부분의 번역이 매우 유익한 것이었으며 이에 감흥을 받아 아마존에서 해당 저자의 원서를 구입해 읽어볼까 하고 찜을 해 놓았다.(wishlist에 수록)
그러나 일부 번역서가 입문서라고 하기엔 너무나 이해하기 곤란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방대한 양의 저작들을 압축해서 제시하려는 How to Read의 원작자들의 고충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 일조한 것이 번역자들의 무성의 내지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자들을 살펴보면 해당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을 연구하는 분들이 한 부류가 있고 또 한부류는 해당 언어를 연구하는 분들이다. 대개 보면 전자의 경우에는 그나마 전문용어가 제대로 우리가 쓰는 전문용어로 번역이 되어 있어 이해가 쉬우나 후자의 경우에는 언어의 뜻은 우리말로 옮겼으나 해당 전문분야의 용어를 제대로 찾아보지 않으므로 해서 우리가 쓰고 있는 용어라고 보기 어려운 용어로 번역되어있어 언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필자가 보기에는 번역의 경우 물론 해당 언어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해당 분야의 전문용어에도 능통해야만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험을 언급하자면 필자는 외국법을 번역한 적이 있는데 그 법을 우리 법관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말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우리 법령이 그 외국의 용어와 같은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고 사용해 왔는지 우리 법에서는 어떤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다시말하면 하나의 외국법을 제대로 번역하려면 우리나라의 그 분야의 용어에 능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외국언어의 전공자들이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도 능통해야 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는 있으나 그러나 최대한의 노력이나 전문가의 감수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또 하나의 필자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독일과 우리나라간의 어떤 협정문을 만들 때 였다. 보통 협정문은 한국어, 상대방 국어, 그리고 영어 이렇게 3개국어로 만드는데 우리는 대개 영어를 위주로 협정문을 만들고 나중에 번역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독일은 독일어와 영어를 동시에 놓고 협상을 하였다. 그 이유는 어떤 독일어 단어가 영어로는 대칭되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를 협상하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영어로 협정문을 만들었다가 나중에 독일어로 번역한 경우에 잘못하면 제대로 의미가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예를 볼때 번역이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많은 번역서들이 시간에 쫓기고 인력이 딸리고 하여 그와같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안타깝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 때문에 필자는 번역서는 읽지 않고 원서를 읽는 것이다.
또 하나의 장애는 외국어와 우리나라 말의 어순의 차이인데 아무리 뜻이 통한다 하더라도 어순이 우리가 즐겨쓰는 어순이 아닐 경우 그리고 부사같은 것이 엉뚱한 곳에 나타날 경우 읽는 것이 매끄랍지 못하다. 이는 번역자들이 다시 정리할 때 좀더 신경을 쓰면 해결될 문제라 생각된다.
끝으로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함에 있어서 신조어나 학문용어 같은 것을 쓰면서 한자용어를 사용하면서도 한자를 병기하지 않아 독자로 하여금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도록 방치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가 한자를 모르는 세대를 위한 것인지 모르지만 필자는 이러한 사태는 우리나라 학문의 수준 나아가서는 우리 국민의 이해력 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는 우리나라의 해당학문 분야의 독자적인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영어원서를 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의 기우일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우리나라 출판업계에서 제대로 심혈을 기우려 번역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말을 훼손하거나 해당학문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왜냐하면 잘못 사용한 번역으로 학생들이 그런 용어를 사용한다면 더 적확한 우리 용어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거나 우리 용어에 괄호로 영어를 병기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