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을 돌아보는 것
집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위치우위의 "유럽문화기행"이라는 책을 읽어본다. 문화기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소하였으나 일반적인 기행문 하고는 좀 차원이 달랐다. 문화적 소양이 깊은 자가 다른 문화를 보면서 느낀 감상을 기술하는 것인가 보다. 낯선 도시를 참신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흥미롭다. 작가의 재미있는 시각에 읽는 이의 그 도시의 역사뿐만 아니라 문학에 대한 지식도 한 차원 고양되는 것 같다. 내친김에 "유럽문화기행 2"를 구입하고 또 "중화를 찾아서"도 구입했다. 중고를 구입했다.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구할 수 없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주변환경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냥 지나치던 것이 아마도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내 주변에 대한 시각이 달라져 가는지 아니면 다른 도시를 여행하기에 앞서 먼저 내 주변부터 여행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최근의 아파트 단지 같이 삭막한 환경이 아니다. 골목길이 사라진 아스팔트 일변도의 폐쇄된 공간이 아니다. 입주민이 아니라도 단지 내에 자유로이 들어올 수 있는 개방된 아파트에 앞으로는 공원이 있고 뒤로도 또 작은 어린이 공원이 있다. 상가와 아파트 사이의 길에는 마치 예전의 골목길처럼 노점상도 있고 구두수선방도 있고 요구르트 아줌마들도 여기저기 서있다. 상가건물에는 카페들이 있고 저녁이면 사람들이 모이는 작은 음식점들도 있다. 물론 세탁소들도 있고 복덕방들도 있고 미용실 만물 공사도 있다. 물론 학원들도 많다.
한 곳에 오래 살다 보니 이들 주변에 계신 분들과 아는 사이들이 되고 단골이 되어서 지나가면서 외롭지 않다. 동네 생활의 하드웨어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들이 노점상과 상가들에 있는 여인들의 수다를 통해서 전해진다. 물론 그들은 나에 대해서도 수다의 먹거리로 활용했을 것이다.
노점상 아주머니는 과거에 지방공무원을 했단다. 주중에는 어김없이 나오는데 주변 야채상에서 경찰에 민원을 넣으면 물건들을 치웠다가 잠잠해지면 또 나온다. 거기에는 한가한 할머니들이 앉아서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밤을 깐다든지 야채를 다듬는다든지 하는 일들이다. 집에 갈 때는 품삯으로 보너스를 받아가기도 한단다. 우리도 아이스크림을 살때 하나쯤 더운데 수고하신다고 먹어보라 하면 고맙다 하면서 다음엔 또 야채 보너스가 나오기도 한다. 저녁엔 안팔리는 것은 떨이로 주기도 한다. 계산도 매번 할 필요도 없고 몰아서 하면 된다. 세탁소 아저씨도 매일아침 순회를 하는데 그냥 맡겨 놓으면 아침에 집으로 배달해준다. 미용실에서 화제가 된 이야기들은 얼마있으면 노점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단다.
나도 길을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안할 수가 없다. 이런 인간관계들이 있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이 아닌가 싶다. 인사 없이 서로 지나치기 곤란한 동네가 인간적인 동네가 아닌가.
요즘 생기고 있는 폐쇄된 아파트 공간을 보면 이런 인간미가 하나도 없는 마치 우주선 기지에 사는 것 같은 삭막한 기분이 든다. 그런 아파트단지를 보노라면 인간이 한없이 왜소해 지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그대로 살다가 죽으면 안 될까. 다른 공간에 가서 다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우리 나이에 그것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