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전환

디스플레이 패널과 그림 캔버스의 미래

관허 2023. 12. 16. 08:32

난 중학교 시절 그림 숙제를 할 때 뭔가 그림에 새로운 시도를 해 보았다. 한 번은 물감에 없던 색 황금색을 

칠해 보려고 염료상에서 금빛 기름(피마자 기름이던가)을 사서 종이에 칠했다가 선생님한테 새로운 시도라고 칭찬받기도 했었다. 또 한번은 풍경화를 그리는데 방 안에서 봐서 쇠창살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그리고자 했는데 아예 쇠창살을 먼저 그리고 그 사이에 풍경을 그려 넣었다. 아쉽게도 이건 선생님 주의를 끌지 못했다. 또 계속 머릿속에  구상한 것이 있었는데 연필 도안 밑그림에 물감으로 직접 색을 칠하지 않고 색의 이름만 적고, 보는 사람이 문자를 보고 저마다 상상 속에서 색을 그려볼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건 아무래도 실현될 것 같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한편으로는 난 내머리가 아주 유연하도록 유지해야겠다고 내심 결심을 굳히고 모든 구속과 중독을 멀리 했다. 친구들이 담배를 할 때에도 난 그 중독을 무지 싫어했다. 또 술을 마시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고는 그런 외부의 자극도 기피했다. 내 마음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뭐 대단한 결심의 소유자 같겠지만 그냥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미술로, 그림으로 새로운 것을 창작해 본 적은 없다. 워낙 손재주가 없어 뎃상도 제대로 할 수없었으니 말이다. 피카소처럼 그림을 그릴 수는 있었겠지만. 그런데 기술의 발달로 말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한편으로 몇 년 전 이집트 여행을 했을 때 호텔에서 아침 TV를 돌리다 보니 그냥 페치카에서 장작이 타는 것만 보여주는 채널이 있었다. 이것은 직접 페치카를 설치하지 못한 사람들이 불타는 것을 바라보는 느낌을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하여 맛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몇 년 전 새 TV를 샀을 때 그 기능 중에 마치 그림을 감상하듯 고정화면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TV 해상도를 과시하는 선전 중에 그림을 TV로 감상하라는 문구가 많이 나온다. 

 

이제 집에 하나의 그림을 걸어놓고 그것만 즐기는 시대가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디스플레이 패널을 벽에 걸고 거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띄어 놓고 즐기다가 싫증이 나면 다른 그림으로 바꾸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지적재산권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림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동영상을 비디오 아트 보듯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아예 CCTV 보듯이 실제 어떤 장소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거기의 풍경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CCTV가 무슨 예술이냐 하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상황이 TV드라마 보다 훨씬 더 미적이고 예술적일 때도 많다. 일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계단을 내려오고 올라가는 사람들만 찍었는데 저마다 개성이 달라 그 모습자체가 재미있었다. 드라마 보다 더 재미있다. 난 예전에 심심하면  2층베란다에서 오가는 사람들만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물론 거긴 번화가라 엄청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통행금지가 가까워 오면 술 먹고 주정하는 사람, 싸우는 사람 등 온갖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그런데 이제 AI의 발달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AI의 도움을 받아 내가 원하는 주제나 감상을 AI에 넣어 그 결과 나온 창작품을 디스플레이를 통하여 감상할 수 있다. 말로써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아예 AI가 나나 가족의 기분이나 그날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그림이나 동영상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GPT10쯤 가면 AI가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생각을 알아챈다고 한다. AI가 스스로 분위기를 파악하거나 집안 행사에 맞추어 예를 들어 손자 백일잔치나 친구 모임, 송년회 등에 맞추어 필요한 디스플레이까지 해주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디스플레이가 이렇게 다양하게 활용되어 이제 캔버스가 필요 없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