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문의 통합과 세계의 통합: 철학의 궁극은 세계의 통합으로 간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정신과 물질의 차이는 기억에 있다 했다. 이 말이 나오기 전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물질과 정신은 다르지 않다가 전제되는 것이 아닐까. 모든 물질과 정신의 근원은 빛이고 빛에는 입자와 파동이 있다. 빛은 에너지이다. 또 물질은 곧 에너지이다. 정신도 그러면 에너지이다. 단순한 우리의 지각이 에너지일까라는 것은 이해가 잘 안 가겠지만 단전호흡이나 뭔가 생각을 집중할 때는 그것이 에너지라는 것은 약간 이해가 간다. 뭔가 감각을 통해 뇌에 들어오는 것이 다 기억되지는 않는 것 같다. 뭔가 또 한 번의 작업이 있어야 기억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러니 뇌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기억이란 집중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기억을 만들고 출력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 아닐까 싶다.
현대 뇌과학은 뇌의 어느 부분에서 무슨 기능을 한다는 것을 연구한다. 거의 다 밝혀져있다. 그런데 그 반대의 작용이 있다는 것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공감하는 유전자라는 책을 보면 생각이 우리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유전된다고 한다. 물질과 정신이 쌍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유물론에서는 정신의 독자적인 활동은 부정한다. 유물론은 종교를 부정한다. 종교에서도 정신이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일부에서는 그 정신이 우리와 차원이 다른 어떤 절대 정신이라고 믿는다. As above, so below만 믿고, As below, so above는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너희가 땅에서 맺으면 하늘에서도 맺힐 것이다라는 것으로 종교 사제직의 근원으로 본다. 인간의 정신 내지는 의식을 물질에서 파생한다고 보는 한에서는 파생물이 근원을 만든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니 정신을 보통 지각 작용과 영혼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는 영혼은 저 위의 절대 영혼과 연결시킨다.
그런데 빛은 입자와 파동이며 그것에는 선후관계가 없을 것이다. 선후관계란 우리의 생각이 이해하기 위하여 만든 허구가 아닐까. 우리는 입자와 파동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도무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우주에 선후관계가 항상 존재할까.
정신이나 의식이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창조를 포함해서)는 것은 신화나 비전에서만 알고 있지 과학으로 입증하는 것은 이제야 연구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단전호흡으로 집중하고 명상으로 또 기도로 건강을 되찾고 나아가서는 마술(헤르메스적)도 부린다. 실제 많이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증명이 힘들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인간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 보자. 왜 어떤 식물은 향기를 만들고 어떤 식물은 독을 만들까. 뭘 섭취해서 그런가 아니면 생각을 집중해서 그런가. 왜 어떤 동물은 독을 뿜고 어떤 동물은 그렇지 못할까. 동물도 의식을 집중하여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인간도 분노로 독을 만든다는 실험이 있다. 인간은 그들을 경외하는 눈으로 보지 못하고 생각이 없다고만 할까. 깊은 생각, 사고는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자만할까. 요즘은 이 의식에 대한 많은 연구가 많이 행해지고 있다.
이런 것에 대한 과학탐구가 극에 달하면 물질과 정신의 관계가 모두 밝혀지면 종교도 대충 해결되지 않을까. 과학이 통합되고 과학에서 힘(역학)에 괸한 통합이론을 넘어 정신까지 아우르는 통합이론이 완성된다면 종교와 과학까지 다 통합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심리학에서 영성을 연구하는데 이것도 여기에 통합되지 않을까.
과학이 종교의 분야에 침투하면 다종다양하게 갈라져 싸우고 있는 종교도 통합의 길로 가지 않을까. 과학에 바탕을 둔 종교가 모든 것을 아우르지 않을까. 허경영씨가 얘기하는 초종교의 시대로 가지 않을까.
현시대 상황이 아직 이런 철학 과학 종교적 지식에 무관심하여 선각자들은 새로운 계몽을 하여야 한다고들 얘기 한다. 물론 과거에도 많은 선각자들이 이런 통합적 세계관을 제시하였으나 일부의 의견, 공허한 주장으로 그쳤다. 전체 인류의 지식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다. 모든 학문의 융합, 과학과 종교의 통합으로 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 그리고 우리 주위의 동식물, 광물 그리고 그 근원의 물질과 의식에 대하여 고찰했다면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측면이 있다. 우리 인간차원 그리고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국가 내지는 사회, 그리고 지구전체 차원의 문제이다. 일찍이 공자가 말했듯이 인간이 먼저 되고 사회가 거기 따르고 온세계도 거기에 따라 다스려지거나 변화한다. 인간의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나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같은 원리로 돌아간다. 우리 몸에 일어나는 부패나 사회부패나 전 세계 부패나 다 같은 작용의 결과다. 이를 우주까지 연장하면 주역이 되고 점이 된다. 인간이 타락하면 사회가 타락하고 나아가서는 지구가 타락해서 멸망한다.
과거 아틀란티스 대륙이 인간이 타락하여(저급한 영이라 하는데 인간이 타락한 것이지 싶다) 멸망으로 갔고 소돔과 고모라도 결국 인간의 타락으로 멸망했다.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주의 법칙은 어디에도 통한다. 개인의 올바른 정신상태로 몸을 다스리지 못하면 암에 걸리고 병이 생긴다. 사회도 암적 존재가 판을 치면 서서히 멸망의 길로 간다. 암과 같은 정권이나 독재자가 나오면 지구 전체가 암에 걸리 듯이 멸망으로 간다.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우주적으로 확장하면 대우주 수우주 원리가 된다. 그런데 이 말만 들으면 사람들은 캐캐묵은 과거 철학인가 하고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애석한 일이다. 르네상스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현재에 그것이 필요하다. 인류는 오히려 과거에 더 똑똑했는 지도 모른다. 통섭적 사고는 과거에 더 잘했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분화하고 지식의 범람으로 점점 인간은 종합능력이 결여된 것이 아닐까.
따라서 학문이 통합의 길로 간다면 인간의 살아가는 정치체제라 할까 사회도 통합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길로 가야 하지 않을까. 기술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가는데 아직 인간의 이기심이 그 반작용으로 더욱더 투쟁의 길로 가고 있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또 한 가지 측면을 고려한다면 즉 순수 정신이 있다거나 인간의 몸을 코랄체 아스트랄체 그리고 멘탈체로 구별해서 볼 수 있다면 생각은 또 한 번 도약하게 될 것이다. 영혼불멸이 되고 영혼은 그 기거하던 육체가 사라지면 영혼의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천당이나 백궁이 있는지는 차치하고. 그런데 영혼에서도 에너지가 필요할까 아닐까. 거기에 파동이 있을까 아닐까 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만일 파동이 있다면 주파수를 맞추어 볼 수도 있는 문제이고 인간의 주파수와 맞지 않는다 해도 무슨 과학 장치를 통하여 변환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과학이 내친김에 영혼이 있을까 하는 문제까지 증명하는 날이 올까. 많은 사례가 영혼의 존재를 얘기하고 있으나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계속 논쟁이 되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그날이 올 지도 모른다. 의식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 자연히 영성으로 가지 않을까. 호흡법으로 유체이탈한다든지 임상체험을 증명한다든지 영매의 영과의 교통현상을 뭔가의 장치로 기록한다든지. 하여간 우리 인간의 지적호기심은 점차 인류궁극의 종착점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인간의 종말로 갈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