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릭스 적응에서 메트릭스 벗어나기
모처럼 여유시간을 가지게 되고 날씨도 따뜻해져서 건국전쟁 다큐를 보러 갔다. 하도 영화관을 가지 않아서 요즘 분위기조차 몰라 혹시나 하고 휴대폰으로 표를 먼저 샀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관에 가서 보니 표 파는 종업원도 없고 검표하는 사람도 없다. 기차 타듯 그냥 알아서 들어간다. 아마도 지정된 자리에 앉지 않으면 직원이 물어볼 것 같다. 표 샀느냐고. 음료수나 살까 하고 봤더니 메뉴판에는 생수가 없다. 밖에 나가서 살까 하고 봤더니 그것도 멀다. 종업원 대면으로 주문하려면 줄을 서야 하는데 아마도 노인용 같다. 거기서 물으니 생수가 있단다. 우왕좌왕하는 노인들을 보면 젊은이들이 혀를 차지 않을까 두렵다.
다큐는 거의 노인들만 보러온 것 같다. 관람 후 부근에 있는 유니클로 매장을 들러 보았는데 하도 신제품 동향에는 어두워 신제품을 보니 새삼스럽다. 맨날 쇼핑앱에서 할인제품이나 떨이제품만 샀는데 매장을 직접 둘러보니 최신동향을 알 것도 같다. 젊은이들이 보면 노인이 두리번거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싶다.
공원을 거닐다 버스를 탔다. 마을버스와 시내버스가 달라 정류장이 달랐다. 정류장을 지니친다고 했더니 이건 시내버스란다. 사람들 보다 내가 먼저 내릴 줄 알고 문가에 섰더니 예상과 달리 내가 길을 막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데 가운데 끼인 것이다. 내립시다하고 소리친다. 그런데 계속 한쪽에서 밀고 오니 비킬 수 있는 장소도 없다. 젊은이들이 그런 노인을 어떻게 생각할까. 오랜만에 나오니 가는 곳마다 촌놈 행세를 하게 되었다.
신문을 보니 축구선수들간에 싸움이 있어 요르단 전에서 참패를 했단다. 그들 간에도 세대차이가 심한 모양이다. 10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세대차이라니. 70대와 20대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축구계뿐만이 아닐 것이다. 정치계는 아마도 더 심할 텐데 어찌 젊은이들이 말이 없을까 아직도 노인세대가 판을 치고 있어서인가. 아직 운동권 청산도 못한 시대에 잘파세대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서일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선은 우리 노인이 재빨리 요즘 세상 돌아가는 추세와 현황을 알아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생각해 본다.
요즘은 내비가 보여주는 대로 운전하고 맛집정보가 보여주는 대로 가서 맛보고 쇼핑앱에서 광고하는 것을 선택하고 심지어는 미팅앱에 의존해 사람도 만나겠지. 음식도 공장에서 만든 것을 시켜 먹고 책도 서점에 나온 것을 읽는다. TV에서 말하는 대로 믿거나 국회의원 후보가 나오는 데 따라 그중에서 선택만 한다. 매사에 그저 선택할 자유밖에 없다. 언제 나다운 음식을 먹고 나다운 생각을 하고 나의 생각을 관철시키나. 이러니 AI가 우리를 대신하고 AI가 만들어 준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매트릭스 영화처럼 그 안에서 그것이 전부인양 바깥세상을 모르고 살게 된다. 플라톤이 말했나 동굴 속의 인간이나 AI시대 인간이나 다름이 없다.
예전에는 내비 없이 운전해서 내머릿속에는 전체 지도의 그림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내비가 없이도 어느 정도는 찾아갈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내비에 길들여 진 세대는 그런 지도가 머리 속에 들어있지 않는 것 같다. 요즘 전화번호 외우는 것이 없는 것처럼. 건국전쟁을 보니 전교조 시대에 그런 것만 배우고 자란 세대가 직접 역사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지 않았다면 교육받은 대로 믿고 있을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라 프로그램된 대로 생각하면 안 된다. 자기의 이성을 갈고닦아 올바른 생각 역사관을 자기 나름대로 구축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닦아 놓은 길만 가서는 안되고 진리를 찾아 탐색해 봐야 한다. AI가 가르치는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찾을 것이다.
깔아준 도로만 다니는 무기력을 벗어나 안 가본 거리도 가보는 용기를 가져야 하고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기쁨도 누려야 한다. 유물론적인 시각을 벗어나 나의 의식이 물질을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공원에서 택견 준비운동을 하면서도 호흡이 어떻게 추운 날씨를 견딜 수 있게 해 주는지를 테스트해 보자. 호흡을 들이켜 내 안에서 돌리고 호흡을 내뿜고 정지하면서 내 주위를 느껴보기도 한다. 새로운 감각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옆에 내 의견을 적어본다. 때로는 신문의 어느 정보를 기반으로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달아보기도 한다. 정보가 증폭되고 새 옷을 입거나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노인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낭창낭창 유연한 마음으로 자기 머리를 활용하자. 어느 한 방향으로 경색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메트릭스를 벗어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슨 알약인지는 모르겠지만 빨간색인지 검은색인지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창조성이 힘을 발휘할 것이다. 창세기처럼 우리가 창조에 동반자가 될 수 있다. AI를 이길 수있다.
AI바둑을 둘 때 거의 내가 상대도 안되지만 어떨 때는 내가 AI가 미처 생각 못한 것을 두어 AI의 말을 잡거나 할 때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