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전환

사소한 깨달음

관허 2024. 3. 9. 05:42

이 아침  그동안 여러 가지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면서 아하하고 손뼉 치는 작은 깨달음의 순간들이 있은 것을 기억해 낸다. 이런 게 사소한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진보의 한걸음일지도 모른다.

 

파동의학이란 두꺼운 책을 다 읽었다.  예전 카발라에서 말하는 인간의 다차원적 구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이제 깊이 그 영향을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것을 보니까 그 설명에 수긍이 많이 간다.

 

그 책을 읽으면서 아하 하고 깨달은 것 하나는 난 그동안 고대인간의 위대한 업적과 사상에 대해 감탄하면서 이게 에덴동산에서 바로 분리되어 신의 마음에서 갓 벗어난 의식의 잔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사라진 아틀란티스 대륙의 고도로 발달한 인간들이 남긴 유산이라는 글을 읽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는 것이 그 하나다.

 

또 하나는 지구가 지각변동을 일으키거나 다시 빙하기가 되어 인류가 멸망할 때 인간은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것에 대하여 어떤 영적인 사람이 인간의 정신이 다른 행성으로 옮겨 갈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줄로 상상하고 있었는데 인간의 다차원적 구성을 이해한다면 육체 차원의 인간이 소멸할지라도 에테르체나 아스트랄체 멘탈체의 인간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데 아하하고 손뼉을 쳤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인간은 빙하기가 되어도 동면하듯이 존재가 지속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죽어서 윤회하지 못한 영혼이 무저갱에 갇혀있다는 것처럼.

 

또 하나는 괴테가 말했다나 인간의 정신도 성장하려면 정신의 허물을 벗어야 한다고. 최근에 난 파우스트도 읽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읽었으나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늙어버려서 그런지 아니면 천국 지옥의 프레임을 별로 신뢰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데 정신의 허물을 듣고 아하 했다. 맨날 내가 주장하듯이 대우주 소우주 그리고 우주의 프랙털 구조를 생각하면서 이건 왜 몰랐을까 하고 생각했다. 땅은 시간이 감에 따라 퇴적된다. 그래서 고고학이 성립된다. 인간의 피부에도 때가 쌓인다. 그러면 당연히 인간의 정신에도 경화가 일어난다. 때가 쌓이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주장한 말랑말랑한 정신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쌓이는 정신의 때를 씻어내야 하는 것이다. 가만히 두면 뱀의 껍질처럼 두꺼워진다. 그러면 우리는 죽는다 정신이 죽고 육체도 따라 죽는다. 빛이 모여 입자적 성질이 물질이 되었고 파동적 성질이 정신이 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둘 다 축적되면 부패가 일어난다. 경화된다.

 

바나드쇼는 사람이 늙어서 삶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에 늙는 것이라고 했단다. 맞는 말이다 정신의 속성상 끊임없이 창조하지 않으면 굳어버린다. 뭔가를 새롭게 탐색하고 발전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단다. 그것이 우리가 윤회하여 이 물질세계를 경험하는 이유란다. 그러면 우리는 숙명적으로 그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신을 계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숙명적 존재인가. 누군가 조물주가 있어 정신의 발전이 지체된다면 다시 죽어서 태어나라고 부추기는가. 난 아직 정신이 말짱하고 할 일이 많다고 주장해야 하나.

 

전에 난 은퇴하면서 그동안 공부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하면서 스스로에게 이 생에 마치지 못할 것이지만 그렇다면 내생에 계속하리라 하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별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은퇴 전에 하던 것과는 다르니까. 보통은 윤회를 생각하면서 카르마라고 전생만 생각하는데 난 후생을 생각한 것이다. 이것도 발상의 전환이라면 전환이다.

 

그런데 이 인간의 다차원적 구조와 윤회라는 것이 인간과 AI의 기본적인 차이점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는데   이것을 어떯게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요가나 단전호흡 명상을 해서 단전이나 차크라를 활성화하고 그에 따라 우리 정신을 고양시키고 뭔가 AI가 따라올 수 없는 창조성 그리고 초월적인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AI와의 차이를 확실히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면 "인간은 명상한다. 고로 인간은 AI가 아니다"라고. 혹시 AI가 명상을 따라 하지는 않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