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전환

디자인의 생활화

관허 2024. 6. 7. 11:32

엊그제 노들섬 국제설계공모에 토마스 헤드윅이라는 사람이 당첨되어 기발한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분이 디자인과 공예 건축이 별개의 것이 아닌데 우리는 아직 이렇게 구분하고 있는데 반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걸 들으니 네덜란드에서 공부한 친구 아들이 생각난다. 건축을 공부한다고 했는데 대학학과는 건축과라고 하지 않았다. 이미 융합된 학과가 운영되고 있었다. 참으로 오늘날의 학문은 융합으로 가고 있다. 수천 년 인류는 학문의 분화와 전문화로 발전을 해 왔다면 이제는 융합으로 발전을 도모할 때이다. 창의성도 거기서 나올 것이다.

 

난 업무를 하면서도 뭔가 새로운 것을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모든 일에 디자인의 관점에서 달리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다못해 사무실에 놓을 응접셋트를 구매할 때에도 그 당시 영동 가구거리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우선 형태를 고르고 거기에 맞는 천을 따로 골라 새로 만들 것을 지시했다. 제가 모시던 국장이 다른 곳으로 갈 때 감사패를 만드는 일이 생겼는데 내가 직접 디자인하고 50여 명의 친필 사인을 동판에 새겨 넣어 그분이 길이 간직할 추억거리로 만들어 드렸다. 

 

옷도 마찬가지이다. 난 한창 업무할때 기성 와이셔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팔길이가 맞지 않고 팔 둘레도 맞지 않고 외국에서 카우스 버튼을 할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아예 적합한 와이셔츠가 우리는 없다. 그래서 생각해서 맞춤 와이셔츠 가게에 가서 내가 원하는 사이즈를 상세하게 설명해서 내 치수를 적어놓았다. 가게 주인이 혀를 내 두를 정도로 상세하게 주문했다. 일단 그렇게 해놓고는 외국에서도 재료 천만 선택하고 주문하면 만들어 주도록 해 놓았다.

 

요새는 자주 갈일이 없지만 양복점에 가서 양복을 맞출 때에도 난 그들의 추천대로 하지 않고 좀 색다르게 주문한다. 늙었어도 몸에 좀 붙도록 해줄 것을 주문한다. 천을 고를 때도 신중을 기한다. 시드니에서 양복을 맞춘 것은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입을 만하다. 

 

행사 기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난 체육대회를 기획할 때에도 내가 체육종목과 시간배분을 기획하고 상품도 직접 구매하고 외국 문화원 오픈 행사 같은 것도 내빈의 동선까지 생각해서 새로운 도전을 즐겨한다. 대사들의 모임을 기획할 때에도 리셉션 만찬 그리고 만찬 후 행사를 3 파트로 나누어 다른 대사들과 협의하여 묻지 마 행사를 한 적도 있고 대사들의 자리배치에서도 또 뽑기를 하도록 하여 남녀의 자리 배치에 새로운 시도도 한 적이 있다.

 

시골집을 보거나 땅을 보면 어떤 집이 적합할까 하고 주변환경을 살펴보고 방위를 보고 설계 스케치를 하는 것이 하나의 취미로 될 만큼 재미있게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이러한 생각이 어떤 계기로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난 유물론을 믿지 않는다. 뭔가 생각하고 창조해 내는 것이 인간의 본연의 업무요 능력이라고 본다. 재발 이런 생각이 치매로 무디어지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