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전환

내 머리 속 녹을 제거하기

관허 2025. 2. 22. 07:22

나이가 들면서 나도 모르게 초심을 잃어버리고 머리가 굳어 가는 것은 아닌지 소위 꼰대가 되어가는 게 아닌지 늘 경계하면서 살고자 한다. 난 학창 시절부터 다른 사람의 사상, 원칙, 또는 선입관 같은 기존의 프레임워크 같은 것의 무조건 적인  주입을 싫어했다. 내 나름대로의 검증을 거쳐 외부의 영향을 받아들이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종교에서도 교조주의를 싫어하고 기독교 신학 같은 것도 무조건 따라가지 않고 내 나름대로 연구해보고자 했다. 아마도 뭔가 주어진 목표를 정해놓고 거기에 논리를 꿰어 맞추는 변호사 같은 직업도 싫어했는지 법이 싫어 전공도 바꾸고 경영학 경제학 외교정치학 신학 같은 것에도 기웃거렸다.

 

지금 70이 넘어 먹은 나이에도 새로운 문물을 익히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중인데 공부해야 할것이 너무나 많다. 과거 난 첨단을 가기를 좋아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기도 하고 중뿔나게 일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머리에 때가 끼어있지 않은지, 머리가 동맥경화에 빠져있지 않은지 녹물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새벽마다 나의 스승이 되는 신문을 열심히 읽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을 뒤져 원본을 찾아보기도 하고 신간 서적을 사고, 모르는 음악 얘기가 나오면 유튜브를 통해 들어보기도 하고 영화나 전시회나 또 관광거리나 젊은이의 신용어 같은 것도 배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AI시대로 그것에 관한 국제적인 경쟁 그리고 최신 기술동향에 대한 기사는 빠짐없이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기술을 몰라도 계속 따라가보지 않으면 그야말로 뒷방 늙은이로 전락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지기 때문에. 물론 이제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AI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세상의 현존 지식을 지혜를 AI는 사람보다 더 많이 축적하고 그것을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어느 한 분야에서 AI보다 더 나은 지식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런데 뭔가 부족하다. 우리 인류가 AI에 모두 맡기재 않고 그것이 보여주는 지식이 진리 그 자체인가 현실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것에 회의를 해보는 것이 어떤가. 아마도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AI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기존의 지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창조자의 분신이라 할 만큼 창조에 기여해야 하고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우리의 뇌를 백 퍼센트 활용하여 우리의 독창성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기계에 내맡기고 동물 같은 생활에 만족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AI가 상상의 그림을 그리고 상상의 노래를 창조해내기도 하는데 인간은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이제 SF 영화에서 본 것처럼 기계와의 전쟁에서 기계보다 더 잘 머리를 써서 기계를 이겨야 한다. 이세돌처럼 알파고가 생각 못한 한방을 질러야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전생이 있고 내생이 있고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세상에서 영적 훈련을 하고 저세상을 갔다가 다시 환생하고 나의 완성을 향하여 나가고자 하는 욕망이 나에게는 있다. 그리고 마음수련으로 기수련으로 나의 몸을 통제하고 신통력도 발휘하고 싶기도 한다. 이것은 기계가 따라오지 못하는 영역이 아닐까. 어떤 자들은 앞으로 기계의 도움을 받아 영적세계와도 통화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무당이나 점을 치는 사람이 귀신과 내통하고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처럼 기계의 도움을 받아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영적인 세계와 교류가 가능하단다. 난 그런 책도 여러 권 읽어 보았다. 대표적인 것이 Seth Speaks이다.

 

그런 고차원의 얘기는 철학자들이나 다른 전문가들이 걱정하겠지만 나의 머리를 아이들의 그것처럼 때묻지 않게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꼰대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머리를 그저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텅 빈 공간, 그러니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골집을 지어도 담장으로 구획 지우지 않고 모든 자연이 나의 집이라는 식으로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

 

나의 상상력을 확장하고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의 작품을 가까이 해서 자극을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소설가가 있고 그림이나 사진이나 음악가나 예술가가 있다. 그런 사람들의 혜안을 받아 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앞서가는 건축가들이 있고 또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철학자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사회학자 그리고 역사학자 심리학자 등 참으로 따라가 봐야 하는 많은 선각자들이 있고 창의적인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그래서 난  필요한 여러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신문을 열심히 본다. 텔레비전은 바보상자 같아 유튜브만 보려고 한다. 왜 그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보기 싫은 작자들이 활개를 치는지 어줍지 않은 지식으로 시청자를 바보로 만들려 하는지 시청자를 코미디 수준으로 만들려 하는지 역사마저 왜곡하려 하는지 보면 볼수록 화가 치민다.  

 

과거엔 난 제대로 현실을 보려고 일본 신문하나 영어신문 하나를 더 보았으나 이제는 앱으로 가끔 보기는 하지만 한국신문 두가지만 열심히 본다. 그러면서 AI번역이 있어도 일어책 영어책을 봐서 내 머리에 언어의 한계를 깨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여정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Second Stage라고 대학에서 노인상대로 과정을 만들어 운영한다든데 아뿔싸 내 나이는 그것도 안된다. 75세가 한계라 한다. 75세 넘으면 그냥 배우지 말고 죽으란 소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