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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전일이다. 당시는 파워포인트가 나오지 않아 슬라이드를 만들어 환등기로 스크린에 투영해서 보고하는 형식을 많이 사용했다. 물론 그 많은 슬라이드를 만들면서 누군가 이러한 번거로운 작업을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했다.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능력이 없어서 우리는 하지 못했다.
환등기를 틀때면 철커덕하는 슬라이드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잠시 화면이 사라졌다가 다음 장이 나오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슬라이드가 스무스하게 다음장으로 넘어가도록 환등기를 두대 사용하게 된다. 그러면 한장은 A환등기에서 나오고 다음장은 B환등기에서 나오는 식이다. 그 사이에 환등기에 신호를 주는 기계가 하나 있다.
이런 기계를 사용해서 그 당시에는 대통령 주재 회의도 했다. 슬라이드 상영시간은 무려 한시간 이상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사고가 난 것이다. 그것도 대통령주재 회의에서다. 보고내용이 거꾸로 순서가 바뀐것이다. 한번이 아니라 한 3번정도. 그런데 마지막에는 처음 보고할 때의 화면이 다시 나왔다. 당연히 보고는 엉망이 되었고 그 사건의 여파는 심각했다. 차관보가 사표를 제출했고 담당기술자는 해임되었다. 담당과장도 그날짜로 전보조치되었다. 다행히 차관보가 사표를 제출하면서 책임이 없는 담당기사는 복직시켜라고 해서 기사분은 살아났다. 난 담당자였으면서도 원인규명과 대책마련을 다시 담당하게 되었다. 책임있는 사람이 규명도 하고 대책도 마련해야했다.
난 기계들을 그날과 똑같이 놓고 실험을 했다. 한참 재현하고 있는데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 원인을 기계전문가한테 물었더니 기계내에 있는 슬라이드 올려주는 장치가 오래되어 일정시간만 들어줘야하는데 좀 오래 들어주어 그 동안에 슬라이드가 두장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A기계에서 1번을 비추고 B기계에서 2번을 비추고 다시 A 기계에서 3번을 비추어야 하는데 두장이 넘어가 5번이 나온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 B기계로 넘어가면 4번이 나온다. 거꾸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 보고순서가 뒤로 가게된다. 보고 마지막에 첫장면이 다시 나오게 된것은 슬라이드 트레이가 꽉차서 보고 마지막 슬라이드가 나올 순서에 한장 더 넘어가 첫장이 나오게 된것이다.
난 이것을 그림을 그려 사건전말을 보고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었다. 물론 그때의 환등기는 다 버리고 최신의 환등기를 다시 구매했다. 그리고 슬라이드 신호보내는 리모콘을 사용하지 않고(그당시에는 보고자가 버턴을 눌러 슬라이드를 돌리는데 기계와 거리가 멀어 응급조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환등기 뒤에 내가 앉아 환등기를 가까이서 조작하도록 했다. 개선후에도 슬라이드가 바로 떨어지지 않는 등 사소한 환등기 오작동은 나왔지만 응급으로 바로 조치가 가능해서 거의 참석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문제는 해결되었다. 물론 난 환등기 돌아가는 한시간반동안은 죽을 지경이었다. 보고자의 말을 들으면서 정확한 시간에 환등기를 돌려야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을 회고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고의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야 문제를 해결하기 쉽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에서도 문제의 근원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9.11 사태 후에 그 사건 보고서가 두툼하게 나오고 일반인이 누구나 볼수 있도록 백서가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제는 상세하게 숨기지 말고 모든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하는 세상이다. 화물을 실을 때 어떤 과정을 거쳐 실었는지, 바퀴고정은 어느 정도 했는지, 누가 언제 문제점은 말을 했는지 등등 배를 인양해서라도 제대로 분석해서 백서를 만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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