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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보다 고차원적인 것
    신학 2015. 11. 9. 22:00

    예전에 어르신들로 부터 고등고시 면접에 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법에 관한 논술문제를 통과한 3차 면접시험에서 면접관이 질문을 했단다. 아이가 옆집의 감나무에 열린 감이 담장을 넘어 아이집으로 넘어왔었단다. 아이가 그게 먹고 싶어 따먹다가 그 집주인한테 발각되었단다. 자네가 그 감나무 주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질문을 했다. 법관이 되려는 수험자들은 법이론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답변을 하려고 했는데 면접관은 그런 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단다. 그저 옆집아이보고 "더 먹고싶지 내가 더 따주마"라든가 "그래 많이 따먹어"라던가 하는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지 인간사회의 근본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수험자가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란다. 난 이 말이 어릴적부터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러다가 수십년이 지난 후 업무를 보는 와중에 이와 유사한 말을 상사한테 써먹은 일이 있다. 옆의 직원이 무슨 법률문제를 해결한다가 머리를 짜내고 있었는데 상사가 나더러 자네도 법을 전공했으니 좀 도와주라고 했다. 그 때 난 "법을 전공하고 실사회에 나와 가장 바람직한 것은 그 법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고 선문답처럼 얘기했다. 결국은 법조문을 따지기 보단 사회 조리에 맞추든가 서로간에 이익이 조화되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우선한다는 것이었다.

     

    시선을 돌려 종교에서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자. 기독교도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 즉 예수이후의 시대로 오면 율법의 준수에서 사랑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잘못하면 율법에 다라 처단하고 징벌을 하는데서 벗어나 사랑으로 보면 용서가 가능하고 오히려 이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어떤가? 모르긴몰라도 불법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계율을 지키기 보다 그것을 초월하여 대자유를 얻는 것, 즉 자비심을 실천하는 것이 더 상위의 덕목이라고 하지 않나싶다. 좀더 유식한 표현을 빌리자면 복잡한 분별에서 무분별의 지혜로 심화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결국은 종교에서나 실생활에서나 인간의 도덕적 자유가 자연스레 발휘되는 것이 천국이요 무릉도원이요 신의 섭리에도 부합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차원을 확 끌어내려서 우리 법생활에 대해서 본다면 날로 늘어나기만 하는 각종법률의 숨막히는 압박 속에서 우리가 허덕이기 보다는 법률을 오히려 없애가는 조리나 이성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현세에서 이상을 실현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모든 정치인들이 각성해 보아야한다. 앞으로 닥아오는 미래의 초물질, 초기술사회에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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