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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뇌출혈 때문에 분당서울대병원을 장기간 다녔다. 몇년동안 병원내 응급실을 포함하여 여러과(뇌신경센타, 재활의학과, 내과, 피부과, 노인의료센타 등등)를 전전하면서 국내 최고라는 병원에서 여러가지 사례를 겪었다. 한 환자를 여러 과에서 맡아 이 사람이 보고 저사람이 봐서 약을 이중으로 처방한 사례, 응급실에서 뇌출혈을 진단 못하고 돌려 보낸 사례, 또 다른 경우에 중증질환 피부병을 응급실에서 피부과에 물어 제대로 진단도 내리지 않고 피부과 진료시간도 잡아주지 않고 돌려보낸 사례, 입원중에도 주된 입원 과에서 약을 처방하고 치료했는데 퇴원 후 계속적인 치료를 해당과에 넘기지 않아 담당과가 사라져 다시 해당과를 찾아간 사례 등 여러가지 의료 실수사례를 겪었다. 소송천국인 미국이나 선진국 같았으면 변호사들이 옳다구나 하고 소송을 걸어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할 만하다.
여기선 이런 소송문제를 제쳐놓고 또 예전에 한번 언급한 의료센타간의 데이타 상호체크문제 이외에 의료제도 선진화 문제를 제기해 볼까 한다. 요즘 해외 의료수출이다 뭐다, 외국환자 유치다, 의료허브 설립 등 마치 우리가 의료 선진국이 다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있는 한편으로 내부에서는 원격의료에 대한 찬반으로 온통 시끄럽다. 이런 와중에서도 의료에 IT를 접목한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기계가 쏟아져 나오는데 정부규제 또 의료계 반대로 우리는 시도조차 못해보고 그 발전의 선점을 외국에 뒤지고 있는 것은 우리 의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선 소비자 입장에서 아주 근본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시스템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이미 지나간 옛날 서비스 시스템인데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있다. 예전에 우체국에 가보면 편지를 붙이는 창구 소포를 붙이는 창구, 전보를 치는 창구, 우편금융을 하는 창구등 잘게 쪼개진 창구가 있었고 국민은 여러가지 일을 보려면 이창구 저창구를 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우편과 금융 두가지 창구만 있다. 은행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외환계, 입출금계, 대출계, 신규거래, 카드 어쩌구 하면서 창구가 쪼개져 있었으나 요즘은 대출은 놔두고 점차 통합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추세이다. 심지어는 한창구에서 펀드판매까지 해야하는 추세다.
그런데 의료계는 어떤가. 일부 암센타에서 환자가 들어오면 관련 여러 의사가 모여서 진단하는 예가 일부 있지만, 그건 아직 극단적인 예외이고 아직까지 잘게 쪼개진 옛날 전문과 체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의과대학 학생들은 전공의가 되고자 오래동안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물론 의학이 배울 것이 많고 임상경험도 많이 쌓아야 해서 한사람이 여러분야 전공의 자격을 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긴하다. 개업의도 뒤에 전공과를 붙이기 위해 전공의 자격 따고 무슨무슨 과의원 하고 붙여야 겨우 환자들이 온다. 이런 와중에서 의사더러 우체국이나 은행원처럼 여러가지 업무를 하라고 하면 가정의학과 수준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여기에도 해결방법은 있다. 운영의 묘가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이래서 의료체계 자체를 의사에게만 맡겨서는 발전이 안된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의료소비자 차원에서 종합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그 방법은 한 사람의 의사가 뇌용량의 한계 때문에 여러가지 병을 제대로 다 겪어보지 못했다면 자존심만 세울 것이 아니라 서로 물어보고, 환자에 대해서 좀더 시간을 투입해보고 판단을 내리고, 이 환자가 이것만 치료할 것이 아니라 다른 치료도 받아볼 필요가 있다면 그 의사에게 환자를 보낼 것이 아니라 다른 의사를 불러서 물어봐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당 불과 몇분만에 진단을 끝내야하는 상황이라고 항변할 지도 모르지만 종합병원에만 너도나도 몰려드는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시스템적인 문제이지만.
그런데 외국에서 병원에 다녀보면 몇가지 차이점에 놀라게 된다. 진단에 매우 신중하다는 것이다. 소송에 미리미리 대비해야 하기도 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일단 환자에게 투입하는 시간이 길다. 요모조모 따져보고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이런 경우 도가 넘는 진단행위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일부 의사는 감기 진단을 위해서 환자를 모두 탈의시키고 감기 이외에 뭐가 있을까하고 여러가지 검사를 해보는 수가 있긴 했다. 또 다른 사례는 환자에게 자기 진단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공 서적을 찾아서 사진도 보여주고 확인시켜주는 사례도 있었다. 여기에 비해서는 우리는 그저 휙보고 목이 부었으면 편도선염 어쩌구 하는 식이다. 계속 아파서 이상하다 싶으면 다시오라는 것이다.
현단계에서 종합병원 의사더러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입해서 환자를 보라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발생시키지만 현단계서도 최소한 하나만이라도 개선되었으면 하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다. 여러번 말하지만 지금 우리 병원은 과간에 또 센타간에 심지어는 한 과 내에서 의사간의 벽이 너무 높다. 우리는 의사가 전능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옆의 의사에게 물어보거나 잠깐 와서 이 환자를 한번 보라거나 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환자에게 안심을 주는 일이다. (예전엔 대학병원에서 의사교수가 여러 수련의와 같이 외래환자도 보는 일이 있었는데 요즘은 수련의가 직접 환자를 대하는지 입원환자만 따라다니는지, 같이 보고 연구하는 사례는 잘 보지 못했다). 물론 옆의 의사가 약간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하겠지만 하루에 몇건이나 생기겠는가. 벽이 얼마나 높은지는 의사와 방 바깥에 있는 간호원간에도 메신저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상하지 아니한가. 말로해도 다 들리는 거리인데 문열고 물어보지 않고 메신져로 소통한다.
과간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는 같은 병으로 세사람의 의사를 한달간에 걸쳐 돌아다닌 일이 있어 그 벽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한기가 들어 병원에 갔는데 처음 의사가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하겠는데 그래도 의심스럽다면 피 전문의를 소개시켜 주겠다해서 진료의뢰서를 보내 다시 날잡아 담당의사를 만나 피검사하고 결과를 보러갔다. 이 의사도 피에는 별 이상이 없는데 하면서 소변검사 쪽으로 가보라 해서 또 진료의뢰서를 줘서 다시 다른 의사한테로 갔다.거기서 소변검사하고 다시 결과를 보러갔다. 결과는 이상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이다. 여기서 처음 의사가 다른 의사와 직접 협의해서 피검사 소변검사 해보면 어떻겠나 묻고 그러면 온 김에 피 뽑고 소변받아 내 놓으면 나중에 결과를 보겠다고 했으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절약되었겠는가.
이런 사례를 겪고 나니 70년대 내 경험이 생각났다. 정부 행정관청에서 과 간에 국 간에 공문을 만들어 보내고 받고하던 게 생각났다. 회의하거나 담당자를 불러서 처리해도 될 것을 가만히 앉아서 공문으로 자료달라고 요청을 하는 식이었다. 요즘은 이런 식의 번거로운 행정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병원에서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경영개선 차원, 의료선진화 차원에서 이런 것은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
아버지와 같은 사례를 예로 들면 의사식의 해결방안을 만든다면 이런 식이 된다. 아버지는 이 현상들이 면역력이 떨어지고 장기간 누워있기 때문에 생기는 병인데 이런 사례의 환자들을 이과 저과로 보내지 말고 모아서 치료하는 센타 예를 들어 "면역계 센타"를 만들자고 할 것이다. (이건 공무원적 사고방식이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서 해결하고자 하는) 그런데 현재의 노인의료센타나 뇌신경센타의 기능을 보면 말만 센타지 그 안에는 여전히 과가 나누어져 있거나 의사들이 각기 제할일만 보고 있는 정도이다. 뇌 하나만 하더라도 뇌출혈 상태를 보는 의사 한사람은 그것만 보고, 치매상태만 보는 사람은 그것만 보고, 출혈이후의 재활과정만 보는 사람은 그것만 본다. 잘게 나누어서 인간의 지식을 발전시키는 단계는 그 다음 통합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 의료계는 다른 분야와 달리 아직 그 단계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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