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장례유감
    사랑 2017. 3. 31. 06:35


    이번에 선친의 장례식을 치럿다. 그런데 보통 사람은 살아생전에 위안을 얻고 사후의 보장을 받기 위해 종교에 의탁하게 된다. 그러면서 종교라는 조직체 안에 들어가 조직생활을 하며 봉사도 하고 헌금도 하고 성직자도 도운다. 그런데  만일 현직으로 있을 때 변을 당한다면 물론 그 사람의 봉사나 직분을 감안하여 주변 사람들이 보통은 그에 상응하는 예의를 갖춘다. 상을 당하면 장례식을 치러주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고령사회다. 지병이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면 대개 90대는 가니 종교조직에서도 적어도 은퇴후 20년이란 세월이 지난다. 종교조직에서도 사람이 계속 바뀌고 기억에서 잊혀져 간다. 주거 이동도 많이 일어난다. 도심에서 신도시로 자녀들이 사는 도시로 이주가 계속된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몸담아 있던 종교조직에서는 거의 잊혀져간다 아무리 교역자를 섬기고 건축헌금을 했다고 해도 세월엔 약이 없다. 


    장례에 당하여 자녀들이 부모가 예전에 알던 교역자를 찾으면 이미 은퇴했다. 현직자에게 물어보란다. 현직자에게 물어보면 누군지 잘 모른다. 당연히 당면한 교회일이 우선이고 거리가 문제가 된다.시간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친분이 없는 사람이 가족앞에서 장례를 주관하기가 어렵다. 결국 종교조직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자손들 몫으로 넘어간다. 만일의 경우에 본인과 자손의 종교가 다르다면? 고인에게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종교조직에서는 자녀를 보고 와서 그 자녀의 부모를 장례해 주는 결과가 된다. 만일 자녀가 없다면? 이건 문제다. 불교에서는 미리 자신을 의탁하는 제도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독교에서는 아직 그런 것이 없는 것같다. 


    만일 장례당시의 명복을 비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러면 본인의 공덕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가 자손의 공덕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가. 자손의 기도로 돌아가신 영혼이 영광을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이 나온다. 아니면 이 모든 말들이 다 부질없는 허상에 기둥을 세우려는 것인가.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캄캄한 현실을 앞두고  (0) 2018.07.23
    기록물의 관리  (0) 2017.04.20
    열린 마음 닫힌 마음  (0) 2016.06.29
    돈 쓰는 방법  (0) 2016.05.30
    이미자 장사익 콘서트를 보며  (0) 2015.03.03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