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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이후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병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어 국가를 개조하자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어느 한 분야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얼마전까지만 해도 규제혁파, 규제개혁이 주장되더니만 어느새 우리 사회는 규제강화쪽에 무게를 실어가고 있다. 그 기회를 타서 국회에서는 안전규제를 강화하자는 법안이 제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면밀히 검토해보면 이 두가지 언뜻보면 서로 상반되게 보이는 두가지 가치가 실은 반대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규제가 있으면 누군가 집행해야 하는데 일선의 담당 공무원을 보면 현재 있는 것도 집행하기 힘드는데 또다시 업무부담만 늘어나는게 아닌가 하고 걱정할 지도 모른다.(뇌물을 받고 고의적으로 집행을 태만히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런 집행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펜대만 놀려 규제를 만들면 내 할일 다했다하는 태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하는 말처럼 문제는 집행이다.
집행을 담당하는 인력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고 모든 것을 타율적 집행에만 맡길 수도 없다. 여기서 불필요한 규제나 규정은 과감히 도려내고 꼭 필요한 것만 효율적으로 집행하도록 모든 규정을 면밀히 분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규제만 양산한다고 해서 국민이 모두 지킨다고 상상해서는 안된다. 엉터리나 불합리한 규제는 전체 규제 자체나 법질서 자체에 대한 회의나 존경심까지 사라지게 만드는 위험이 있다.
쉬운 우리 주변의 예를 들어 외국과 비교를 해보자. 골목길마다 주차가능하다는 흰색 구획과 주차금지 노란색 줄이 그어져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선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 외국에 나가보면 그 선을 준수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교통딱지 세례를 받는다. 이것은 집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왜 여기에 흰색 주차선을 그리지 않고 노란 줄을 그렸는지 이해가 안가는 장소가 많다. 충분히 주차가 되도록 해도 되는 공간에 왜 금지를 했을까가 의문인 자리가 많다. 이런 납득이 가지 않는 규제가 준수하려는 마음을 사라지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 당국이 줄하나 그을 때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줄 긋는 방법도 평행으로 할 것인지, 사선으로 할 것인지, 수직으로 할 것인지를 도로의 폭과 다른 차량의 통행을 잘 생각해서 해야 하는데 우리는 천편일률적으로 통일해 버린다. 따라서 넓은 길에 평행주차구역을 그읏는데 그래도 반대편에 주차할 공간이 충분하다면 거기에 그어져 있는 노란색 금지구역은 이해가 안가는 효과를 내고 만다.
외국에 나가보면 일단 모든 선이 합리적으로 잘 그어져 있구나하는 감탄이 나온다. 이런 골목길까지 다 생각해서 페인트칠을 했나 하는 감탄도 나온다. 그런데 또하나 놀라운 것은 지나가는 시민(특히 스위스 할머니들)들이 남이 조금만 위반하는 것을 보면 어김없이 뭐라고 지적한다. 그런 예를 본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노란색 줄을 위반해서 차에서 승객이 내리게 하면 지나가는 사람이 당장 지적하고 심지어는 주차를 삐딱하게 했다고 바로하라고 하기도 한다.
또하나의 사례를 보자. 예전에 미군부대 내에 소영화관이 있어 가본적이 있는데 좌석이 몇십개 밖에 되지 않는데 사람들이 좀 많이 와서 가운데 통로를 막아가면서 바닥에 그냥 사람들이 앉았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기 전 영화관을 관리하는 한 젊은 직원이 앞에 나와서 이렇게 소방규정을 어기면서 앉으면 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고 하면서 가운데 앉은 사람을 일어나 뒤로 가라고 했다. 영화를 상영 못한다 하니 할 수 없이 그사람들은 젊은 직원의 말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아하 이사람들은 이렇게 철저하게 규정을 숙지하고 지키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결국 법 규정을 만드는 일은 집행의 가능성까지 다 생각하고 그 집행수단과 집행에 관련된 사회적 비용, 예산까지 다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한편, 국민이 스스로 지키게 만드는 제반 여건을 조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반여건이라는 것은 국민이 납득하는 합리성, 생활 습관, 교육 등 모든 것이 갖추어지도록 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런 것이 국가개조이고 선진화 방안이 아닐까.
이런 고민없이 조직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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