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무전공제에 대하여선진한국 2024. 2. 16. 06:09
대학 진학자에 대하여 전공학과별로 공부하게 하느냐 학제 간 융합을 위하여 전공 범위를 얼마나 광범하게 허용할 것이냐 아예 전공과목을 자유에 맡길 것이냐 등 논의가 있고 그런 방향에 대하여 대학과 교육당국 간의 의견차이가 있는 것 같다.
대학 생활이라 하면 박사가 아니면서 나만큼 많이 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무려 10년 넘게 대학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 경험을 소개하고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뚜렷한 나의 비젼이 없이 그냥 공부만 해서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 계획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대학 원서를 쓰게 되었는데 그때는 담임선생이 대충 학과를 정해주었다. 내 차례가 와서 선생님을 만났더니 다짜고짜로 "자네는 상대 가는 거지" 하고 물었다. 난 그냥 "네?" 하고 의문을 표시하면서 뭔가 상담을 해볼까 하고 물었더니 "그럼 아니면 법대지" 하면서 끝내버렸다. 나는 그냥 수긍하고 말았다. 어차피 뚜렷한 목표가 없었으니.
다행히 법대에 합격하여 공부를 하는데 웬걸 내 성격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공부와 토론에 있어서도 무척 힘들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느낌이었다. 고생 고생해서 공부를 하고 친구 따라 사법시험공부를 했는데 그만 2차에 또 하나 싫어하는 역사 논술이 끼어들었다. 이것도 공부하기가 싫어 미적거리다가 보기 좋게 과낙을 맞아 사법시험 전체에 대한 흥미까지 잃어버렸다. 딱 한번 시험 치고 거기에 실패를 맛보고 나서 아예 사법시험에 대한 미련을 던졌다. 그리고는 행정고시로 방향을 바꾸어 6개월 만에 합격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법과목보다 역시 경제 쪽이 공부가 맞는 것 같고 진도도 빨리 나갔기 때문이다.
공무원을 하면서 이번에는 유학의 길이 생겨 법을 계속할까 하다가 역시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고 업무에 별 소용도 없을 것 같아 이번에는 경영학으로 바꾸었다. 미국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역시 창의성이 필요하고 그룹토의를 위주로 하는 경영학 공부는 재미가 있었다. 하버드 케이스를 놓고 토의하고 개선점을 찾는 것이 창의성도 키워주었다. 이 경험이 상공부 공무원 생활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역시 대학교육도 한10년 지나면 효력도 다 없어지나 보다.
이번에는 국방대 석사과정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전공은 정치경제와 국제관계이다. 이것이 이후 외교부에서 일하는 밑거름이 될 줄은 몰랐다. 운명의 길이 미리 정해져 있는지는 모르나 몇년 후 통상교섭본부로 옮기게 되어 거기서 외국과의 양자 다자 무역 협상 등을 하게 되었다. 이건 나의 성격과 맞는지 아주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협상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외국에 나가 총영사도 하고 대사도 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도 되었다.
은퇴를 하고 나서는 그동안 관심은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종교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예 신학대학교 등록까지 했다. 그런데 학생도 적고 배우는 것도 시원치 않아 한 학기만 하고 학비가 아까워서 그만두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학에서 전공을 나중에라도 쉽게 바꾸거나 아예 전공도 없이 자유로 선택해서 공부하게 해 주었다면 시행착오를 많이 줄여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친구들은 마찬가지 이유로 아예 타 대학에 다니면서 청강을 하러 오기도 했으니 이를 제도적으로 가능하도록 터 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에서 무전공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주로 교수들의 기존영역 방어와 채용과 해고의 경직성에 있지 않나 싶다. 학생 선호에 따라 신속히 대응하는 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아 한쪽엔 교수가 놀고 한쪽엔 부족하게 되니 말이다. 그런데 대학의 주인이 학생이지 교수가 아닌데 붕어땅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학생을 넣으려 하니 문제가 발생한다. 해결방법은 이 틀을 가능한 한 부수어서 학생의 자율성을 확보해 주도록 혁신할 일이지 기존 틀을 고수할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사회의 변화속도가 워낙 빨라 대학자체 시스템을 경직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교육 당국도 그 추세에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 규제를 대폭 줄여서 대학자율에 맡겨야 하는데 대학도 경직적이라니 말이 안된다. 벌써 수십 년 전인데도 미국 대학에 갔더니 과목을 듣는 것도 경쟁이라 베팅을 하게 되어 있었다. 인기가 많은 강의를 들으려면 그만큼 나의 배점을 많이 써넣어야 했다. 아마도 이런 것이 교수평가에도 도움이 되고 교수채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상당부문 주권이 교수에서 학생으로 이미 옮겨져 있었다.
미래의 세계는 우리 대학 시스템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사회나 정치체계도 마찬가지이지만. 그것을 중앙에서 파악하여 변화에 적응하고자 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불가능하기도 한다. 공산주의 체제가 실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중국에서는 예전에 직업도 당에서 정해주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현장이고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감지할 수 있고 거기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도록 사회시스템을 유연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의사나 경영에 지원자가 몰리는 현상이 있더라도 장기적 영향 을 정부나 대학에서 판단하여 강제하지 말고 학생에게 맡기면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될것이다. 의사가 병원만 경영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도 할 수있고 또 변호사로 나갈 수도 있다. 사람을 바다로 돌진하는 쥐떼로 간주해서는 안될 것이다. 전공을 대충 정해놓고 교육하는 것이 사회적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어차피 학문은 하나고 또 융합으로 가고 있다. 사람은 저마다 역할이 주어져 있으니 그것을 너무 빨리 기계적으로 나누지 말고 電子가 어딘가 떠 돌다가 어느 순간 어디에서 보이듯이 불확실 상태를 용인하자. 이제 먹고사는 문제는 거의 해결되는 시대가 오니 자유롭게 놔둬보자. 그러면 어떻게라도 제갈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이 아닌가.
'선진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KT 셋톱박스 설치 유감 (2) 2024.03.01 판교의 한 맥주펍과 도깨비경매장 (0) 2024.02.24 메트릭스 적응에서 메트릭스 벗어나기 (2) 2024.02.15 은퇴자의 역할에 대하여 (1) 2024.02.10 성난 사람들과 성난 국가 (1) 2024.01.24